[디자인정글] 리걸 디자인, 디자이너가 법과 계약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방법

202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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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한 인터뷰] 디자이너 출신으로 '올바른 디자인'을 변호하는 서유경 변호사 (2)


최유진 에디터  |  2022-08-18




디자인과 법률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해서 세상에 내보이면 생각보다 많은 법률적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권리다. 

서유경 변호사는 디자이너 출신이다. 디자이너 출신의 디자인 전문 변호사. 디자인을 전공하며 디자인과 법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디자인 전공자로서 디자인을 잘 이해하는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디자인 업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분쟁사례들을 지켜보아왔고,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디자이너를 변호할 뿐 아니라 강연을 통해 디자이너가 누려야 할 권리, 지켜야 할 규칙을 알리고 있다.

 그녀가 하는 다양한 일들은 디자이너 개인뿐 아니라 디자인 업계를 위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 갖길 꺼려하던 분야, 디자이너가 쉽게 주장하지 못했던 권리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서유경 변호사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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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들이 법과 계약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디자이너들이 좀 더 용기를 내서 ‘법과 계약, 그리고 제도”를 디자인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유럽 네덜란드에서 개발된 계약서를 본 적이 있는데, ‘이게 정말 계약서야?’라는 생각이 들 만큼 좋았습니다. 가장 쉽게는, 디자인 스튜디오도 자신들의 계약서부터 잘 구비해서 디자인해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최근 PaTI(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에서 날개(안상수 디자이너)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계약서를 개발해서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날개가 법률용어, 문장, 그리고 문서의 형태에 관해 의견을 주셨어요. 계약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도 좋지만 일주일 정도 시간을 더 들여서, 읽기 쉽고 보기에도 좋은 계약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어요. 실제 결과물은 매우 세련되었고요.

그때, 변호사로서는 익숙하고도 당연해서 그냥 넘어갔던 법률용어, 문장들, 그리고 계약서의 형태에 대해 눈이 새롭게 떠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국 컨셉을 가장 제대로 이해했을 때 가장 좋은 디자인으로 나오는 것처럼, 계약을 체결하는 목적과 그 중요한 내용을 가장 잘 이해한 상황에서 읽기 쉬운 문장으로 다듬고, 내용에 가장 부합하는 레이아웃, 표 등을 구비하는 것. 이렇게 계약서를 잘 만든 디자이너는 당연히 자신의 계약조건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니, 비즈니스도 잘 할 수 있겠죠?

이렇게 말하니 혹자는 “계약서를 예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계약서가 아무리 예뻐도 계약서인데, 불필요한 것 아니냐는 뜻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해하기 쉽고, 계약서를 봤을 때 기분도 좋고, 그래서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보다 좋은 계약을 체결하고 싶은 의지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디자인과 법률이 융합된 해외 사례가 있을까요?

최근 미국 스탠포드 로스쿨과 디스쿨의 융합 연구실, 리걸 디자인랩(Legal Design Lab)을 필두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리걸 디자인(Legal Design)이라는 개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즉,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일반 수요자들이 법과 제도, 계약 등을 어떻게 잘 이용할 수 있게 해줄 것인지 연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2022년 2월에는 한양대 김지은 교수님 연구팀과 함께 HCI Korea 학회에서 워크샵을 가지기도 했고, 한국디자인진흥원 디자인 DB에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HCI KOREA 2022, Legal Design @ Thinking 워크샵 자료 중


변호사로서 디자이너 법률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디자이너를 기르는 법”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한해 동안 한예종, 제주대, 세종대, 한양대 등 교육기관을 비롯해, 서울문화재단 예술청을 비롯해 정부 공공기관, KAKAO(카카오), NAVER(네이버)와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아이디어스 소담상회, 노트폴리오와 같은 스타트업 등 여러 채널을 통해 강의를 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이 남는 것은 서울대와 홍대의 디자인 전공생들과의 인연입니다.

디자이너를 기르는 법 강의 현장


올해 1월과 2월 사이 서울대 디자인학부 후배님들과 “디자이너를 기르는 법”이라는 주제로 법률강의를 했습니다. 학부 졸업생인 후배님들이 학교에 법률강의를 듣고 싶다고 해서 요청을 했고, 후배님들과 총 다섯 차례 강의를 했습니다. 디자이너가 왜 계약, 법률, 제도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지, 경력관리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가장 기본적인 용어와 계약서 읽기, 지식재산권 제도, 분쟁에 처했을 때 대처방법 등을 여럿 다루었습니다.

강의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오프라인도 만석이었고, 온라인으로 유럽에서 강의를 듣는 디자이너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론을 교육하고, 제 동료 디자이너들이 현장에서의 경험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이론과 경험이 함께 할 수 있다면 참으로 시너지가 크게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제 강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즐겁고 뜻깊은 경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후, 홍대 시각디자인 한글꼴연구회의 연락을 받아서 폰트(저작권법)와 글자체(디자인보호법) 관련 법률자문도 해주었습니다. 학생들이 궁금해하고, 직접 알아보기 위해 고민하고, 피드백하면 적극적으로 수정하는 등의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디자이너들이 계약, 법률, 제도에 관해, 학생들부터 많이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그라픽스와 인연이 닿아서, 디자인전공생들부터 디자인실무자까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가제) 디자이너를 기르는 법>을 출간하기로 계약했고, 현재 열심히 집필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로서 디자인 산업계 종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디자이너들이 변호사, 변리사와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멋지다’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해외 선진국에서 일한 디자이너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법률적 이슈를 상당히 친숙하게 여기고 있고, 일이 터지기 전이라도 변호사와 협업을 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제가 경험한 최고의 디자이너는 캐나다 출신인데, 변호사와 협업할 때 굉장히 스마트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디자인 교육 차원에서도 법률교육이 보다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이너가 모든 법률을 외워야 하고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필수 교육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비단, 예쁘고 멋지게 만드는 방법만 배워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디자인으로 어떻게 경력을 관리하고, 비즈니스를 할 것인지 기본부터 배워야 하는데, 이때 법률적 개념은 매우 기본적 초석이 됩니다.

개념을 외우지 않더라도, “작업실에서 타인의 디자인을 사진으로 촬영해서 SNS에 업로드 해도 되는가?”, “공동 아이디어를 짜냈던 사람이, 나중에 몰래 다른 곳에 가서 비슷한 디자인을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계약을 한 것과는 달리 자꾸 이상한 요구를 다는 클라이언트가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이런 질문들을 하고, 스스로 고민해보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해보고, 필요하다면 법률적 자문을 통해 답을 찾아 나아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 번째는 현재 실행하고 있는 것인데요. 우선 현장의 디자이너들을 직접 찾아가보고, 그들의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인터뷰할 생각입니다. 디자이너들의 진솔한 경험과 직관에 관한 이야기를 경청하고, 계약과 비즈니스에 관한 글들을 쓸 생각입니다.

두 번째는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순조로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디자인 산업계 비즈니스 구조를 잘 살펴보면, 취약한 점이 여럿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잘못 소송에 걸리면 오명을 쓰거나 폐업에 이르는 등 부담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건전한 경쟁구조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세 번째는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바라는 것. 영어에 콤플렉스가 있는 편인데, 영어공부를 열심히해서 언젠가 영어로 해외 디자인 전문가들을 직접 인터뷰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탠포드 로스쿨과 디스쿨에서 연구하고 있는 마가렛 하간(Margaret Hagan)을 인터뷰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간은 디자이너 출신으로 스탠포드 로스쿨을 나온 법학 연구자입니다.

궁극적으로 저는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현재는 수련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정통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면, 그 다음 기회가 자연히 연결되고 열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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