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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빈 김정빈 대표 인터뷰
서유경 변호사 | 2023-04-04
선형 경제에서 순환 경제로 전환될 시대. 수퍼빈(superbin)은 쓰레기를 다시 소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스템과 물류 인프라를 재편하고 있다. 오전 10시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산뜻함과 상쾌함이 느껴졌다. 쓰레기를 다루는 회사가 이토록 정갈하고 세련될 수 있는지 감탄하고 있는 순간, 인터뷰이 김정빈 대표가 아침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뜻밖의 모습이었다. 그때 아침 업무 중이던 책임이 다가와 사무실 투어를 시켜줬다. 서로 칸막이 없이 열린 공간에서 일하는 직원들, 프로그램 개발실, 투명한 보석 같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작은 소품으로 전시된 공간, 그리고 유기견 사진과 캘린더를 감상하며 ‘참 재밌는 회사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청소를 마친 김정빈 대표가 들어와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Q. 동적인 운영체계를 갖추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직 문화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자기다움’과 ‘다양성’입니다. 보통 일하러 간다고 하면 급여를 받고 주어진 과업을 잘하는 것으로 이해하죠? 하지만 여기에서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만들어야 합니다. 일을 통해서 자기만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깊이 있게 만들어야 하고, 그 방법으로 동료들과 함께 합을 맞추며 일하는 것이죠. 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고, 무엇인가 기여할 수 있을 때 조직은 역동성을 가질 수 있게 돼요.
각자 자신만의 철학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면접을 볼 때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열 명 중 9명은 뭐라고 얘기하는지 아세요?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라고 무난하게 답하지만, 그건 꿈이 없다는 뜻과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가령 “은퇴를 하고 조그마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해요. 왜냐고 물어보면 그 사람 인생에서 그만큼 책이 중요했던 거예요.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미를 두고 바라볼 객체가 다양해지는 거죠.
다양성을 추구하다 보면 이질적이니까 필연적으로 불편함이 발생하기도 해요.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갈등을 감당할 수 있는 인내력과 성숙함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내가 독립적이어야 다른 사람이 독립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서로 독립적인 사람들끼리 마주 보면 서로 다르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긴장과 갈등이 생기죠. 그래서 그런 것을 허용하는 조직문화를 갖추려고 하고 있어요.
Q. 굉장히 스마트하면서도 쿨(cool)한 조직 문화입니다.
세상에는 정해진 답을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요. 정답을 찾고, 정답이 없으면 당황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지를 주세요.”라고 하죠. 특히 큰 조직 속에서 자기 책임으로 하고 싶지 않을 때 더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어른이면 알아서 하자”라는 어덜트(adult) 문화가 있어요. 뭔가 역할이 주어졌고, 그 역할을 해내는 과정에 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소통하고, 표현하고, 마무리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하자는 거죠.
가령, 청소하는 시스템을 살펴보면, 2주 단위로 8명씩 묶어서 청소 당번을 정해요. 당번이 되었는데 자기 업무가 바쁘다고 한다면 아침에 일찍 나와서 청소를 하고, 아침에 출장을 가야한다면 퇴근하고 난 다음 청소를 하죠. 만약 청소를 해야 하는데 늦게 해야 하거나 다른 사람의 업무에 방해가 될 것 같다면 ‘청소방’에 “점심시간에 마저 하지 못한 청소를 마무리할게요.”라고 올려요.
그런 문화를 어느 정도로 성숙시키면 통제와 관리라는 게 따로 필요하지 않아요. 굉장히 고요한데 에너지가 넘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요. 왜냐하면 스스로 판단을 하니까요. 큰 회사를 다닐 때도 이런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각자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창업가만 할 수 있는 일이죠.
※ 김정빈 대표는 삼성화재, 삼정 KPMG, 한국섬유기술연구소를 거쳐, 중견 철강업체인 코스틸의 대표이사(CEO)까지 역임했고, 2015년 6월 수퍼빈을 창업했다
Q. 수퍼빈은 선형 경제에서 탈피하여 순환 경제를 지향하는 회사지요. 회사에서 하는 프로젝트 중 눈에 띄었던 것은 ‘찾아가는 고물상’이라는 수퍼빈모아 프로젝트였어요. 폐지나 폐품을 줍는 분들에게 일감을 주고, 소득을 창출하는 것이죠. 그 분들도 경제적 플레이어로 본다는 관점이 참신했어요. 어떤 원리인가요?
경제란, 캠페인이나 공익적 활동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어요.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시장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해서 들어가면 너무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죠. 스스로 작동하니까요. 폐지나 폐품을 줍는 분들은 페트병이나 알루미늄 캔 같은 것을 모아서 수퍼빈에 팔아요. 기존에는 한 달 내내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일주일 만에 벌 수 있게 되니까 수퍼빈과 계속 거래하고 싶어 하고, 더 잘해오지요. 그분들이 하루 종일 모아온 폐기물 값으로 고작 2만 원을 주면서 그것을 15만 원에 되팔면 어떻겠어요? 그분들에게 5만 원을, 10만 원을 줄 수도 있겠지만, 기존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거예요. 이게 문제였어요. 그분들의 노동력이 취약할 수 있는 구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이죠.
Q. 서울에서 수퍼빈의 ‘네프론’의 실물을 직접 보고 왔어요. 굉장히 세련된 디자인으로 되어 눈에 잘 띄는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고, 깔끔하게 운영되고 있더군요. 쓰레기나 재활용품 수거기는 더러울 것이라는 선입견, 외진 곳에 있어야 한다는 편견이 말끔히 사라지더군요. 네프론을 설치하려면 지자체와 소통은 필수적입니다. 지자체도 분명 어떤 목적과 필요성에 따라서 선택했을 텐데, 그게 무엇인가요?
지자체가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자치적으로 위치를 선정하고, 수퍼빈은 의견을 줍니다. 지금은 좀 더 잘하는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으니, 벤치마킹으로 따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폐기물을 처리하는 기존의 프로세스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니 실마리라도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대안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네프론을 선택합니다. 폐기물이 발생했으면 그 지역의 지자체가 반드시 모두 해결을 해야 해요. 종로구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종로구에서 모두 해결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요? 다른 지역으로 보낼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그 지역은 해결을 할 수 있나요? 어렵겠죠.
해결 방법이란 구체적으로는 ‘소각’과 ‘매립’이죠. 폐기물이 나오면 재활용이 되는 것은 빼고, 나머지는 소각이나 매립을 해야 하는데, 그 허용량이 정해져 있거든요. 예를 들어, 하루에 200톤으로 양이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소각도 200톤, 매립도 200톤밖에 못 해요. 그런데 그날 발생한 폐기물이 420톤이에요. 그러면 20톤이 남잖아요. 그러면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가 없죠. 모든 지자체가 한계에 이른 상태에서 소각량과 매립량을 간신히 채우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새로운 소각물이 10톤 더 들어오고 있어요. 이때, 소각장을 하나 더 놔야 할까요? 세상에 10톤짜리 소각장은 없어요. 200톤짜리 소각장을 하나 더 짓게 된다면 1,000억 원이 들어가요. 뿐만 아니라 토지수용 절차도 밟아야 해요. 7년 동안 민원을 다 받아 가면서 200톤짜리 소각장을 더 만든다면 비효율적이잖아요.
그보다는 재활용될 수 있는 것들을 흡수해서, 버퍼(buffer; 완충제)를 만들어주는 게 좋죠. 재활용품을 몇 톤 빼 준 만큼 여유가 생기는 거니까요. 지자체에서 20억 정도 투자를 하면 네프론이 100대 정도 팔려요. 10톤씩 빨아들일 수 있죠. 그렇다면 7년 동안 1,000억 원짜리 소각장을 지어야 할지, 바로 쓸 수 있는 20억 원짜리 네프론을 써야 할지 바로 답이 나오죠.
※ 네프론(nephron)은 원래 인체에서 노폐물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 신장의 세포를 뜻한다. 신장이 혈액을 깨끗하게 정화를 하듯이, 수퍼빈은 도시 내 순환자원을 수집하여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순환자원 회수로봇의 이름을 ‘네프론’이라고 지었다.
참조 링크: https://superbin.co.kr/company/nephron
※ 폐기물관리법 제5조의2에 따르면 생활폐기물은 발생지에서 처리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제1항). 만일 그럴 수 없을 때에는 다른 지자체와 협의하여 관할 구역 외부로 반출하여 처리할 수 있는데(제2항), 이 경우 반입량을 고려하여 반입협력금을 징수할 수 있다(신설 제5조의3 제1항 참조). 동 내용은 2022. 12. 27. 신설되었고, 2024. 12. 28. 시행될 예정이다.
Q. 수퍼빈은 네프론으로 수거한 페트병을 플레이크(flake)나 펠릿(pellet)과 같은 소재로 가공해서 석유화학 산업계의 유수한 기업에도 판매하고 있죠. GS칼텍스, 롯데케미칼, SK종합화학 등 대표 기업들이 주요 고객이자 투자자예요. 이 기업들도 분명히 경제적 관점에서 필요한 선택을 했겠지요. 핵심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키워드는 “기후위기”입니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온실가스이고, 온실가스의 80%는 이산화탄소와 메탄인데, 이 기체들을 유발할 수 있는 10대 업종이 있고, 석탄이나 석유를 이용하는 화학산업이 여기에 속하지요. 기업들이 석탄이나 석유를 리파이너리(refinery; 정제시설)을 통해서 플라스틱 소재를 만들어 거래를 하게 되면, 탄소세와 탄소국경세가 붙어요. 석유화학 산업계를 지배하고 있는 몇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에서 플라스틱을 생산하기도 하고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유통을 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석유화학 기업이 화장품 기업에게 플라스틱용기를 만들어서 납품하려면, 유럽의 탄소국경세 영향을 받게 돼요. 그런데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기 위해 수퍼빈에서 만든 플라스틱 소재를 쓰게 되면 탄소 자체가 배출되지 않으니, 탄소세나 탄소국경세의 적용을 받지 않아서, 세금이 제로가 되죠. 폐기된 플라스틱을 수거해서 다시 플라스틱 소재로 가공할 때, 탄소 배출량은 이론적으로는 제로이거든요.
※ 탄소세 :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따라 내는 세금이다. 자국 내에서 탄소를 배출한 만큼 세금을 내야 하니,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배출량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여 붙이는 것이다.
※ 탄소국경세 :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국가에서 적은 국가로 수출할 때 적용되는 무역관세이다. EU는 ‘유럽 그린딜’ 전략을 발표하며, 늦어도 2023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계획이다.
Q. 수퍼빈의 꿈은 ‘도시를 만드는 회사’이지요? 거시적 순환 경제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쓰레기를 ‘회수한다’라는 개념을 적용하면서 나름의 방식대로 도시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네프론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규제, 전기통신설비 설치, 탑차의 진입, 주민들의 민원 등 다양한 경험을 했고, 거대한 주거단지나 빌딩에서 순환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에 관해 계속 실험하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가설만으로는 힘들고 결국 부딪혀 봐야 할 문제입니다. 폐기물에 대한 선형 경제 기반의 역할론은 더 이상 유효하기 힘들어요. 순환 경제 기반의 대응 방식이 필요하고, 그것에 필요한 국가적 인프라가 구축될 필요가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올랐다. 존재의 본질과 의미, 그리고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을 탐구하는 것처럼, 김정빈 대표는 폐기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수퍼빈은 올해 경기도 화성에 페트병을 소재로 가공하는 ‘아이엠팩토리’를 준공했다. 이 공간은 ‘그린 뉴딜’ 자원순환 인프라로서 의미도 있지만, 생활 속 고정관념을 바꾼 혁신적인 공간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손잡고 나들이를 나와 ‘U’자 형으로 된 공장을 둘러보며 페트병이 눈꽃 같은 플레이크로 가공되는 투명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유기견들도 머물며 수명대로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의 선의나 호의에 기대어 성공할 수는 없다. 순환 경제적 합리성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도 괜찮다는 희망을 탐색해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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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빈 김정빈 대표 인터뷰
서유경 변호사 | 2023-04-04
선형 경제에서 순환 경제로 전환될 시대. 수퍼빈(superbin)은 쓰레기를 다시 소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스템과 물류 인프라를 재편하고 있다. 오전 10시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산뜻함과 상쾌함이 느껴졌다. 쓰레기를 다루는 회사가 이토록 정갈하고 세련될 수 있는지 감탄하고 있는 순간, 인터뷰이 김정빈 대표가 아침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뜻밖의 모습이었다. 그때 아침 업무 중이던 책임이 다가와 사무실 투어를 시켜줬다. 서로 칸막이 없이 열린 공간에서 일하는 직원들, 프로그램 개발실, 투명한 보석 같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작은 소품으로 전시된 공간, 그리고 유기견 사진과 캘린더를 감상하며 ‘참 재밌는 회사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청소를 마친 김정빈 대표가 들어와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Q. 동적인 운영체계를 갖추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직 문화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자기다움’과 ‘다양성’입니다. 보통 일하러 간다고 하면 급여를 받고 주어진 과업을 잘하는 것으로 이해하죠? 하지만 여기에서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만들어야 합니다. 일을 통해서 자기만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깊이 있게 만들어야 하고, 그 방법으로 동료들과 함께 합을 맞추며 일하는 것이죠. 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고, 무엇인가 기여할 수 있을 때 조직은 역동성을 가질 수 있게 돼요.
각자 자신만의 철학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면접을 볼 때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열 명 중 9명은 뭐라고 얘기하는지 아세요?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라고 무난하게 답하지만, 그건 꿈이 없다는 뜻과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가령 “은퇴를 하고 조그마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해요. 왜냐고 물어보면 그 사람 인생에서 그만큼 책이 중요했던 거예요.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미를 두고 바라볼 객체가 다양해지는 거죠.
다양성을 추구하다 보면 이질적이니까 필연적으로 불편함이 발생하기도 해요.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갈등을 감당할 수 있는 인내력과 성숙함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내가 독립적이어야 다른 사람이 독립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서로 독립적인 사람들끼리 마주 보면 서로 다르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긴장과 갈등이 생기죠. 그래서 그런 것을 허용하는 조직문화를 갖추려고 하고 있어요.
Q. 굉장히 스마트하면서도 쿨(cool)한 조직 문화입니다.
세상에는 정해진 답을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요. 정답을 찾고, 정답이 없으면 당황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지를 주세요.”라고 하죠. 특히 큰 조직 속에서 자기 책임으로 하고 싶지 않을 때 더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어른이면 알아서 하자”라는 어덜트(adult) 문화가 있어요. 뭔가 역할이 주어졌고, 그 역할을 해내는 과정에 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소통하고, 표현하고, 마무리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하자는 거죠.
가령, 청소하는 시스템을 살펴보면, 2주 단위로 8명씩 묶어서 청소 당번을 정해요. 당번이 되었는데 자기 업무가 바쁘다고 한다면 아침에 일찍 나와서 청소를 하고, 아침에 출장을 가야한다면 퇴근하고 난 다음 청소를 하죠. 만약 청소를 해야 하는데 늦게 해야 하거나 다른 사람의 업무에 방해가 될 것 같다면 ‘청소방’에 “점심시간에 마저 하지 못한 청소를 마무리할게요.”라고 올려요.
그런 문화를 어느 정도로 성숙시키면 통제와 관리라는 게 따로 필요하지 않아요. 굉장히 고요한데 에너지가 넘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요. 왜냐하면 스스로 판단을 하니까요. 큰 회사를 다닐 때도 이런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각자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창업가만 할 수 있는 일이죠.
Q. 수퍼빈은 선형 경제에서 탈피하여 순환 경제를 지향하는 회사지요. 회사에서 하는 프로젝트 중 눈에 띄었던 것은 ‘찾아가는 고물상’이라는 수퍼빈모아 프로젝트였어요. 폐지나 폐품을 줍는 분들에게 일감을 주고, 소득을 창출하는 것이죠. 그 분들도 경제적 플레이어로 본다는 관점이 참신했어요. 어떤 원리인가요?
경제란, 캠페인이나 공익적 활동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어요.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시장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해서 들어가면 너무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죠. 스스로 작동하니까요. 폐지나 폐품을 줍는 분들은 페트병이나 알루미늄 캔 같은 것을 모아서 수퍼빈에 팔아요. 기존에는 한 달 내내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일주일 만에 벌 수 있게 되니까 수퍼빈과 계속 거래하고 싶어 하고, 더 잘해오지요. 그분들이 하루 종일 모아온 폐기물 값으로 고작 2만 원을 주면서 그것을 15만 원에 되팔면 어떻겠어요? 그분들에게 5만 원을, 10만 원을 줄 수도 있겠지만, 기존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거예요. 이게 문제였어요. 그분들의 노동력이 취약할 수 있는 구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이죠.
Q. 서울에서 수퍼빈의 ‘네프론’의 실물을 직접 보고 왔어요. 굉장히 세련된 디자인으로 되어 눈에 잘 띄는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고, 깔끔하게 운영되고 있더군요. 쓰레기나 재활용품 수거기는 더러울 것이라는 선입견, 외진 곳에 있어야 한다는 편견이 말끔히 사라지더군요. 네프론을 설치하려면 지자체와 소통은 필수적입니다. 지자체도 분명 어떤 목적과 필요성에 따라서 선택했을 텐데, 그게 무엇인가요?
지자체가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자치적으로 위치를 선정하고, 수퍼빈은 의견을 줍니다. 지금은 좀 더 잘하는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으니, 벤치마킹으로 따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폐기물을 처리하는 기존의 프로세스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니 실마리라도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대안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네프론을 선택합니다. 폐기물이 발생했으면 그 지역의 지자체가 반드시 모두 해결을 해야 해요. 종로구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종로구에서 모두 해결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요? 다른 지역으로 보낼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그 지역은 해결을 할 수 있나요? 어렵겠죠.
해결 방법이란 구체적으로는 ‘소각’과 ‘매립’이죠. 폐기물이 나오면 재활용이 되는 것은 빼고, 나머지는 소각이나 매립을 해야 하는데, 그 허용량이 정해져 있거든요. 예를 들어, 하루에 200톤으로 양이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소각도 200톤, 매립도 200톤밖에 못 해요. 그런데 그날 발생한 폐기물이 420톤이에요. 그러면 20톤이 남잖아요. 그러면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가 없죠. 모든 지자체가 한계에 이른 상태에서 소각량과 매립량을 간신히 채우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새로운 소각물이 10톤 더 들어오고 있어요. 이때, 소각장을 하나 더 놔야 할까요? 세상에 10톤짜리 소각장은 없어요. 200톤짜리 소각장을 하나 더 짓게 된다면 1,000억 원이 들어가요. 뿐만 아니라 토지수용 절차도 밟아야 해요. 7년 동안 민원을 다 받아 가면서 200톤짜리 소각장을 더 만든다면 비효율적이잖아요.
그보다는 재활용될 수 있는 것들을 흡수해서, 버퍼(buffer; 완충제)를 만들어주는 게 좋죠. 재활용품을 몇 톤 빼 준 만큼 여유가 생기는 거니까요. 지자체에서 20억 정도 투자를 하면 네프론이 100대 정도 팔려요. 10톤씩 빨아들일 수 있죠. 그렇다면 7년 동안 1,000억 원짜리 소각장을 지어야 할지, 바로 쓸 수 있는 20억 원짜리 네프론을 써야 할지 바로 답이 나오죠.
Q. 수퍼빈은 네프론으로 수거한 페트병을 플레이크(flake)나 펠릿(pellet)과 같은 소재로 가공해서 석유화학 산업계의 유수한 기업에도 판매하고 있죠. GS칼텍스, 롯데케미칼, SK종합화학 등 대표 기업들이 주요 고객이자 투자자예요. 이 기업들도 분명히 경제적 관점에서 필요한 선택을 했겠지요. 핵심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키워드는 “기후위기”입니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온실가스이고, 온실가스의 80%는 이산화탄소와 메탄인데, 이 기체들을 유발할 수 있는 10대 업종이 있고, 석탄이나 석유를 이용하는 화학산업이 여기에 속하지요. 기업들이 석탄이나 석유를 리파이너리(refinery; 정제시설)을 통해서 플라스틱 소재를 만들어 거래를 하게 되면, 탄소세와 탄소국경세가 붙어요. 석유화학 산업계를 지배하고 있는 몇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에서 플라스틱을 생산하기도 하고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유통을 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석유화학 기업이 화장품 기업에게 플라스틱용기를 만들어서 납품하려면, 유럽의 탄소국경세 영향을 받게 돼요. 그런데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기 위해 수퍼빈에서 만든 플라스틱 소재를 쓰게 되면 탄소 자체가 배출되지 않으니, 탄소세나 탄소국경세의 적용을 받지 않아서, 세금이 제로가 되죠. 폐기된 플라스틱을 수거해서 다시 플라스틱 소재로 가공할 때, 탄소 배출량은 이론적으로는 제로이거든요.
Q. 수퍼빈의 꿈은 ‘도시를 만드는 회사’이지요? 거시적 순환 경제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쓰레기를 ‘회수한다’라는 개념을 적용하면서 나름의 방식대로 도시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네프론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규제, 전기통신설비 설치, 탑차의 진입, 주민들의 민원 등 다양한 경험을 했고, 거대한 주거단지나 빌딩에서 순환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에 관해 계속 실험하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가설만으로는 힘들고 결국 부딪혀 봐야 할 문제입니다. 폐기물에 대한 선형 경제 기반의 역할론은 더 이상 유효하기 힘들어요. 순환 경제 기반의 대응 방식이 필요하고, 그것에 필요한 국가적 인프라가 구축될 필요가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올랐다. 존재의 본질과 의미, 그리고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을 탐구하는 것처럼, 김정빈 대표는 폐기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수퍼빈은 올해 경기도 화성에 페트병을 소재로 가공하는 ‘아이엠팩토리’를 준공했다. 이 공간은 ‘그린 뉴딜’ 자원순환 인프라로서 의미도 있지만, 생활 속 고정관념을 바꾼 혁신적인 공간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손잡고 나들이를 나와 ‘U’자 형으로 된 공장을 둘러보며 페트병이 눈꽃 같은 플레이크로 가공되는 투명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유기견들도 머물며 수명대로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의 선의나 호의에 기대어 성공할 수는 없다. 순환 경제적 합리성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도 괜찮다는 희망을 탐색해 볼 수 있길 바란다.